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②
강호철 사회복지사

1. 들어가기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이라는 제목 하에 올해 12월말까지 월 1회씩 제주사회복지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이 글은 ‘생존전략’이라는 그 표현만 놓고 본다면, “사회복지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근무하고, 그 과정에서 승진도 할 것인가 등에 관한 글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앞으로 계속 이 글을 접하면 접할수록 알게 되겠지만, 이 연재의 글은 표면적 느낌과는 달리 ‘내가 소속되어져 있는 조직과 그 조직을 매개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현장에서 만족 또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인드와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탐구형 인문 스토리 성격을 갖는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복지인의 천방지축 생존전략’ 2번째 스토리인 5월 주제로 필자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선택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신입직원이 입사하면, 우리는 그 직원에게 ”왜, 사회복지현장을 선택했나요, 왜, 우리 회사에 입사했어요, 왜, 이 사업을 담당하고 싶어하죠“ 등과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반대로 신입직원은 ”선배님은 타 직업선택의 기회를 마다하고 왜 지금까지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곤 한다.

우리 사회복지현장가는 왜, 이런 질문을 서로 주고 받는 것일까. 무시해도 될, 웃어넘겨도 될 단순히 예의적인 질문일까, 아니면 ’찾고자 하는 답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한 행태요, 과정‘인 것일까.

이 글을 통해 짧지만 깊게 사회복지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료로써 서로 소통도, 탐구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찾은 개별적 해답이 있다면 서로 공유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잠시 가져보도록 하자.

 

2. 질문 ’분석‘하기

우리 인간이 내뱉는 말은, 표현은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단어 하나 하나, 수식어 하나 하나가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분야 또한 사회진단을 사회복지사업의 첫 출발점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또한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의미를 그 내면에 담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이 질문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의미는 하나일까 아니면 복합적인 것일까.

먼저 질문에 대한 표면적 구분이다. 이 구분은 쉽다. 그냥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주어, 동사, 목적어 등으로 단순히 나누면 된다. 그 구분 결과는 아래 [표1]과 같다.

[표1]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1영역

2영역

3영역

4영역

그럼 상기 [표1]의 4개 영역 중에서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통 질문 대비 사회복지현장가인 당신은 어느 영역을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하는가. 음, 그러니까 달리 표현하면,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상기 [표1]의 4가지 영역중에서 어느 영역에 포커스 맞춰진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운가. 그렇다면, 아래 [표2]와 같이 필자가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재 배치해볼테니, 이를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표2]

구분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 하고 있는가.

 

 

 

 

  • 이 일을 하고 있는가.

1영역

2영역

3영역

4영역

  •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자, 이제는 선택했는가.

아마 ’실천성 혹은 책임성‘이 연상되는 ’나는 하고 있는가‘ 대비 ’4영역‘을 선택하는 사회복지현장가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 ’기능과 역할‘을 떠올리며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대비 ’2영역‘을 꼽는 사회복지현장가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목적성‘을 바탕으로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대비 ’3영역‘을 택하는 사회복지현장가도 있을 것이다.

어느 영역을 선택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관계성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그 인지를 바탕으로 중요한 키워드를 선택하는 기회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느가‘라는 질문이 갖는 의미를 내실있게 정리할 수 있다.

혹, 아직도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기에, 여기에서 조금 양념을 쳐서 살펴보자. 양념은 바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세부적 분석 접근‘이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표3]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표3]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

용기 = 실천

결정했다

자기결정권 = 의지

원했다

욕구 =

’~ 하고 있는가‘라는 표현은 표면적으로는 행(行)에 포커스 맞춰 ’~을 하고 있다.‘라는 의미, 즉 ’실천, 그 실천을 위한 용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 무엇인가를 행(行)한다.‘는 것은 ’~을 하기로 했음을 결정했다, 혹은 ~을 하기로 결정했음을 바탕으로 이렇게 행하고 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자기결정권, 의지‘가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행(行)과 결정(決定)은 궁극적으로 나의 바램, 즉 ’원함(꿈, 욕구)‘이라는 씨앗에서 뻗어나온 줄기가 될 것이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어렴풋이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느가‘라는 질문이 갖는 의미가 엿보이는가.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갖는 의미, 즉 그 가치는 바로 ’나는 도대체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계획(결정)을 하고 있고, 그 계획 대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인 것이다. 이 자문자답은 아래와 같이 3가지 형태의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존재론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꿈이 무엇인가를 찾는 질문이다.

둘째,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나는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계획 수립 및 판단하는, 즉 자기결정에 대한 질문이다.

셋째, 나의 꿈과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한 자기결정(계획)을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에 대한 자성적 질문이다.

 

3. 질문 의미에 ’가치‘ 부여하기

[표3]에서 밝혔듯이, ’나는(혹은 당신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꿈, 자기결정, 실천‘에 대한 자문자답 질문이다. 이에 대한 의미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존재론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꿈이 무엇인가를 찾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곧 인간으로서, 사회복지현장가로서, 사회복지시설 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찾는 질문이기에 결국 ’전문직업적 정체성‘ 정립에 관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나는 어떤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복지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인인가‘에 관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우리 대한국민은 (중략)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중략)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해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현장가로서 나는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계획 수립, 즉 자기결정에 대한 질문이다.

혹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조직 또는 사회복지현장이 미리 알아서 나의 욕구를 총족시켜줄 계획을 수립해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이 근무하는 조직은 당신의 연사업계획을 작성해주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당신은 분명 ”아니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 시혜적인 혜택인 제공되는 조직은 없다.

나의 꿈을 위한 계획은 내가 수립하는 것이다. 나의 계획이 있어야 조직의 계획에, 사회복지현장의 계획(예: 정책적 제안 및 중장기 계획 반영 등)에 그 계획을 스멀스멀 물들일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의 성장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인간이 먼저인지, 사회가 먼저가 아니다. 이 순서가 뒤바뀔 수는 없다.

'파괴적 혁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위, 연봉 등 외적인 조건은 아무리 좋아도 그저 불만이 없는 상태를 만들 뿐"이라며 "사람들은 상사로부터의 인정, 도전적인 일거리, 책임감 등 내적인 조건이 충족됐을 때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출처: 비즈니스워치 / [꿈의 직장]③외국인, 한국 기업문화에 大실망 / 2014.05.23.)

셋째, 나의 꿈과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한 자기결정(계획)을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에 대한 자성적 질문이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한자)과 달라 한문 글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출처: 훈민정음 해례문 서문)’라고 그 이유를 밝혔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보다는 우리나라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었다는 그 과정과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특정 목적이 있고,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계획이 있다고 한들 이를 구현해내는 실천적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일을 하면서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일은 단조로워지고 삶은 정체된 것처럼 느낀다. 성장을 위해서는 일이 너무 쉽고 익숙해서도 안 되고 기존에 했던 것만 반복해서도 안 된다. 자율성과 함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출처: [마음산책]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5.09.04)

그럼 이와 같은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질적으로 채워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꾸준히 행해야 할까. 바로 학습, 즉 배움이다. 즉, 나 자신의 역량을 강화함에 게을리함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장 안에서의 교육의 기회도 중요하고, 직원이 다소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요청한다면 융통성 있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4. 질문과 ‘변화’ 그리고 ‘행복’ 연결하기

필자는 앞에서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도대체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계획(결정)을 하고 있고, 그 계획 대비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가에 관한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그럼 ’나는(혹은 당신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이 자문자답 형태의 질문은 ’나 자신과 신입직원 그리고 타 사회복지현장가‘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첫째, 인간의 생활과정은 일종의 활동체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일이란 인간의 활동체계 자체이면서 동시에 그 활동이 물상화(物象化)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단순히 자연에 본능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성과를 축적·발전시키며, 자기 생존을 위한 도구와 수단을 생산하여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다. 이를테면 인간은 일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만들고, 일을 통하여 인간본성을 획득하며, 더 나아가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결과 일의 수준과 내용은 인간활동의 역사적 발전 과정이나 생산력의 발전 수준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일을 통하여 역사적 인간이 되며, 개인은 일을 통하여 사회적 개인이 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렇듯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일(노동)은 자아 실현의 도구이자, 나의 노동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반면에 타인의 노동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 기여 수단인 것이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일하는 것은 원래 괴롭고 힘든가요? (사회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사회질문사전, 2011. 11. 1., 전국사회교사모임))

그래서 ’우리 삶이 일정한 형태를 띠는 한 우리 삶은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스미스(1842-1910))‘는 주장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오노레드 발자크)'는 이론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사상은 지금도 가치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행복, 즉 영어로 happiness의 어원은 ‘happen(일어나다)’이다. 그래서 행복은 이런 순간 순간들을 자각하는 사람의 몫이다. 즉, 행복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노력에 의해 가꿀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느끼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잠시 행복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 행복은 금방 방전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학벌, 명예, 재산, 외모 등과 타인의 기준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면 행복 역시 자신만의 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자리에서 훌륭히 역할을 해 내고 있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역시 사랑 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면, 나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행복해 할 수도 있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행복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나요?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HIDOC))

예로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을 떠올려 보자. 이 소설은 40여년간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 늙은 양치기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찬 새로운 숲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 소설 속에서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흐르며,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는 숲’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 즉 행복이 없었다면, 늙은 양치기는 나무 심는 행위를 40여년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신입직원에게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고 질문 하는 것은, ”혹, 꿈을 가지고 계세요. 만약 없다면 꿈을 그리세요. 그리고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세요. 그런데 그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사회복지현장과 우리 조직의 제 기능과 역할을 고려하면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담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당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당신은 앞으로 행복할 수 있어요.“라고 변화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에 타 사회복지현장가에 대한 질문은 ’나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이렇게 변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변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까.‘라고 서로의 변화 과정과 성과 등을 공유하는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렇듯이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가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변화‘, 즉 꿈과 자기결정 그리고 실천을 바탕으로 ’현재의 내가 또 다른 나로의 변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나와 우리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5. 나가며

제주지역 사회복지 종사자 인권실태 및 욕구조사(2020,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사협회)에 따르면, 도내 사회복지인은 ’사회복지관련 업무의 사회적 가치성과 전문성 등에 대해 지역사회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5점 척도 대비 평균 3점대)으로 조사되었으며, 현 직장의 근로환경과 조직문화 등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지 않은 것(5점 척도 대비 근로환경 평균 3.39, 조직문화 평균 3.37)으로 파악된다. 이 두 가지 모두 문제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도내 사회복지현장가들이 ’나 자신과 관련된 사회복지종사자의 권익옹호를 위한 제 노력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다(5점 척도 대비 평균 2.88)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4월에 게재한 ‘안녕하세요, ‘천방지축 생존전략’입니다!‘에서 < '외부의, 주변 환경의 변화와 성장'은 ’나의 변화와 성장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나 자신이 바라는 직장 문화(예: 행복한 직장 문화 등)는 ’동료직원의, 고객의, 중간관리자의 혹은 시설장의 변화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라고 강조하였다.

덧붙여 만약, ’나 자신이 어떤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주변 환경의 변화로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고, 즐겁지 않고,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스트레스 등에 휩싸여져 있다면… 타인에게서, 주변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아려 하지 말고… 그 무엇보다도 먼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 자신을 성찰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란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칙은 사회와 나, 혹은 조직과 나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의 ‘동학개미운동’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고,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대하를 이루는 자연현상 또한 동일한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강호철 사회복지사
강호철 사회복지사

이와 같은 공통된 법칙 대비 사회복지현장가로서 우리 모두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비효과의 발생지점이 사회 혹은 조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즉, ‘나 자신’으로부터의 지속적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조직과 사회에서의 나비효과는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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