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조/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
71. 식물치유(3)
△ 최초 육지 상륙작전 식물은 이끼류다
초기 육지는 바닷물처럼 물이 풍부한 곳이 아니었다. 육지는 식물이나 동물 등 생명체 하나 없는 황량한 대지에 불과했다. 땅덩어리만 달랑 있었다. 그냥 햇볕이 비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정도의 무생물 환경 그 자체였다. 그런데 처음 육지로 올라갈 기회를 잡은 것은 엽록체 색소를 가진 시아노박테리아 녹조류에서 진화한 선태식물이다. 즉 이끼류다. 육지 상륙작전 식물이다. 물론 이들은 곧바로 육지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초기에는 번식 유전자가 육지 생활에 맞게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다와 육지 사이 축축한 습지였다. 그리고 육지로 올라갈 수 있는 만큼의 진화를 기다렸다. 그때가 4억 년쯤이다.
이끼 식물은 그렇게 육지 상륙작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육지에 적응할 수 있는 진화를 계속했다. 그러함에도 이끼 식물의 육지 상륙은 실패로 끝났다. 습지가 아닌 땅에서 물을 빨아들일 수 있는 관다발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끼 식물은 육상식물의 조상에 가까울 뿐이지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육지로 올라온 식물은 어떤 식물일까? 그것은 현재 솔잎란과 비슷한 식물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난과 식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식물이다. 솔잎란류는 육상식물 중에 가장 원시적이다. 뿌리도 잎도 없이 습한 곳에서 살며 줄기에서 광합성을 한다. 솔잎란은 오늘날까지 9종 정도 남아있다. 그중에 1종은 제주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라수목원 식물목록(2001) 자료에 의하면 솔잎란은 서귀포시 관내 천지연, 천제연, 돈내코계곡 등지 바위틈에 매우 드물게 자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Ⅱ급으로 지정해 보호받고 있다.
그런데 솔잎란류는 육지에서 영역을 넓이는 데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틈타 다른 식물들이 나타났다. 관다발이 있는 고생 석송류다. 이때가 데본기 3~4억 년쯤이다. 석송류는 잎이 작은 소엽이다. 활발한 광합성으로 빠르게 번식하고 자라면서 육지를 점령했다. 석송류가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석탄기 거대한 숲을 이룬 식물이다. 이 시기에는 또 다른 대표적인 식물도 있었다. 쇠뜨기류다. 소가 잘 뜯어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는 없고 땅속줄기를 가졌다. 번식은 포자로 한다. 줄기 끝에 이삭처럼 포자낭을 달고 있다. 가지에는 마디가 있다. 작은 잎들이 가까이 붙은 상태로 줄기와 가지를 감싼다.
그리고 이들보다 뒤늦게 출현한 양치식물 고사리류도 있었다. 데본기 이후 중생대 대멸종 이전까지 석송류가 거대한 숲을 이루고, 고사리류는 이 시대를 휩쓸 정도로 번성했다. 나무고사리가 많았다. 이때가 식물 역사에 가장 중요하고 획기적인 진화의 시기였다. 원생 고사리류 중에 현생으로 발전한 식물은 고사리삼, 나도고사리삼, 제주고사리삼 등이다. 이중 제주고사리삼은 구좌읍 등 곶자왈 지대에 자생하고 있다. 2005년부터 멸종위기 Ⅱ급 식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식물은 번식방법에서도 획기적인 진화가 일어났다. 그동안에는 포자로 번식했다. 그러나 종자번식도 나타났다. 이 또한 엄청난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무고사리류가 그 일을 해냈다. 데본기에서 석탄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자 고사리류가 등장했다. 나무고사리 후손이 소철류로 보기도 한다.
종자번식의 출발은 겉씨식물이다. 꽃가루를 통해 수정했다. 꽃가루 수정에는 바람이나 곤충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쥐라기와 백악기 대성공을 거둔 나무가 송백류다. 이전의 석탄기 석송류와 쇠뜨기류, 나무고사리까지 뒤섞여 울창한 나무숲을 이뤘다. 그렇게 이어온 송백류가 오늘날 제주에서도 소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림을 이루며 오름 곳곳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겉씨식물들도 단점이 있었다. 종자의 배에는 이를 보호하는 막이 없어 쉽게 훼손됐다. 종자가 외부로 노출됐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있는 배를 보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출현한 것이 배를 보호하는 꽃이다.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의 진화다. 이 시기가 2억 년쯤이다. 잎의 생장 세포에서 꽃받침을 만들고 꽃잎을 만들고 수술과 암술을 만들었다. 꽃의 유전자 상호작용에 따라 수술이 꽃잎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ABC모델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씨앗을 보호하는 꽃의 체계를 형성했다. 그 조상 후보감으로 갈참나무를 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속씨식물의 꽃은 오늘날 다양한 꽃으로 진화돼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식물의 종류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구조도 그렇고 형태도 그렇다. 씨앗에서 발아할 때 잎이 하나인 것도 있고 두 개인 것도 있다. 잎 모양도 여러 가지다. 꽃 모양도 마찬가지다. 수정 전략을 위해 꽃의 색도 천차만별이다.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들이다. 그렇게 해서 키우고 맺힌 씨앗은 껍질로 단단하게 둘러싼다. 맛있는 과일즙으로 덮는다. 동물들이 이를 먹고 씨앗을 멀리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줄기도 다양하다. 덩굴줄기가 있는가 하면 곧은줄기도 있다. 온도나 습도, 일조량 등에 따라 가지에 초록 잎을 남겨놓기도 하고 해마다 겨울이 되면 잎을 떨어뜨려 알몸상태로 보내기도 한다. 뿌리에서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광합성을 하는 생리 구조도 다양하다.
이렇듯 식물의 기원을 보면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 성공을 거뒀다. 투쟁은 한정된 자원을 얻기 위한 싸움이다. 환경 자원이라고 해서 영원한 것은 아니다. 생명체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늘어나기도 하고 급격하게 줄어들기도 한다.
다시 한번 식물진화의 역사를 요약하면 최초 지구는 생명체가 없었다. 먼지 입자의 세상이었다. 산소도 거의 없었다. 이산화탄소가 많았다. 이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혐기성 세균이 탄생했다. 개체 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바다 유기물 등의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치열한 먹이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이런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는 방법이 등장했다. 외부의 유기물질을 이용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자체적으로 유기물질을 합성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바로 광합성 세균이다. 시아노박테리아다. 물과 이산화탄소와 햇볕을 합성해 포도당 유기물을 생산하는 체계다. 새로운 방법의 출현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엄청난 번식이 가능했다. 광합성 세균의 급증은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소비와 함께 마구 뿜어내는 산소로 뒤덮게 됐다. 그렇다고 그대로 멸종될 수만도 없었다. 산소로 뒤덮인 지구에 산소로 호흡할 수 있는 호기성 세균이 등장했다. 호기성 세균의 등장으로 지구에는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율이 현재처럼 균형을 이뤘다. 특히 지구 탄생 때는 불덩이 고온과 높은 기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평균기온은 13.9℃이며 기압도 많이 낮아졌다. 지구 탄생 때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수십억 년을 거쳐오는 동안 환경과 생명체의 줄다리기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생명체는 환경에 대응하며 더 효율적이고 강한 개체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단순 세포에서 복잡한 세포로 발전하고 수많은 기관이 결합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그것은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발전했고 포자번식에서 종자번식으로 발전했고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발전했다. 이 모든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고 대응하면서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도 있었다. 46억 년 이후 오랜 지질시대 동안 식물의 멸종과 재탄생은 반복됐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 대변화였다. 그때마다 대사건의 경계지점을 이뤘다. 육상에 식물이 출현한 8억 년 전 이후만 하더라도 적어도 12차례에 걸친 지구 대사건으로 많은 식물이 사라졌다. 그 가운데 5차례는 대멸종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건 속에서도 식물은 다시 일어났다. 그럴수록 종 다양성도 풍부했다. 안정된 기후에서는 다양성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식물만이 아니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강력한 치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몸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치유력이었다. 그리고 치유력을 바탕으로 진화가 있었다. 강한 유전자를 남기고 그 유전자를 더 강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환경적으로 중대한 위기나 대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해 대멸종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돌연변이 등 새로운 생존방법을 찾아 그 환경에 적응하는 개체의 다양성으로 발전하고 있다.
수십억 년의 역사 속에서 식물의 삶은 부족한 환경 자원과의 투쟁이었고 넘쳐나는 개체 수와의 전쟁이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전적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우수한 유전자의 진화가 이어지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했다. 그렇게 살다가 또다시 위기가 닥치면 이에 맞게 적응하는 개체로의 진화가 거듭됐다. 현존하는 제주 식물에도 후빙기 투쟁을 거치면서 옮겨온 식물이 많다. 투쟁 과정에는 치유도 함께 했다. 한마디로 식물의 역사는 투쟁과 위기와 치유가 반복되면서 진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생명체 유전자에는 위기가 닥치면 이를 회복하려는 치유력이 내재해 있다. 생명에 위험이 닥치면 이를 피하려는 본능적인 방어로서의 면역과 회복 능력이다. 이 회복 능력이 치유력이다. 그래서 치유력은 식물 등 모든 생명체 유전자 속에 새겨진 회복 기제로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지구의 환경도 생태계를 통해 치유가 이뤄지면서 항상성을 이루듯이 사람도 그 원리를 이어받은 유전적 형질에 따라 치유가 일어나고 있다.
△ 식물의 생존은 영역확보 투쟁이다
앞에서 식물의 기원을 봤듯이 식물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다. 식물 종끼리 싸움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공간에서 터를 잡고 살아감에 있어 내외적으로 부딪히는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다고 적을 피해 아무 곳에서나 무턱대고 살 수도 없다. 자신에 맞는 환경조건이라야 편안하게 살 수 한다. 그런 조건은 다른 식물들도 탐내기는 마찬가지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자원을 놓고 빼앗기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싸움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삶이고 생존이다.
식물이 발을 붙이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땅은 식물의 집이다. 한번 집터를 정하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다. 식물의 운명이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집터를 잡아야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 그러나 땅은 한정돼 있다. 그리고 모든 땅이 평평하지 않다. 경사진 곳도 있고 하천도 있다. 오름도 있고 경작지도 있다. 제주는 해안에서 백록담까지 고도차가 심하다. 식물이 자라는 식생 상태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지형적 요소가 식물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음은 집터를 둘러싼 기후요소다. 기온이나 강수량, 햇볕, 바람 등이다. 식물 생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기후가 일정한 것도 아니다. 변화무쌍하다. 이런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렇다고 좋은 환경조건에 집터를 잡고 살아간다고 해도 늘 편안할 수 없다. 자신을 노리는 적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식물을 먹이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해충이다. 사람도 있다. 이 중에 식물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은 뭐니 뭐니해도 사람이다. 나무를 잘라 각종 재료로 사용한다.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뒤엎고 불을 놔 몰살시킨다. 편리한 길을 만들기 위해 가장자리에 자라는 식물 몸뚱이를 무참하게 자른다. 가축을 몰아놓고 뜯어먹게 한다. 식물의 자라는 공간을 뺏어 도로를 만들고 도시를 만든다. 이렇듯 식물은 언제 어느 날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식물은 자기들끼리도 싸워야 한다. 부족한 땅이나 햇볕을 받기 위한 공간 확보 쟁탈전이다. 큰 키로 햇볕을 독차지한다. 무지막지한 넝쿨로 감아 다른 식물의 숨통을 옥죈다. 때로는 각종 화학물질을 만들어 뿜어낸다. 그렇게 해서라도 식물은 그에 맞춰 살아간다. 햇볕이 부족하면 부족한 것에 맞추기도 하고 키가 클 수 없으면 작은 키에도 맞춘다. 그렇게 하면서 식물은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불평 하나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제주 식물을 둘러싸고 있는 직간접적인 환경요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주가 탄생한 역사와 그에 따라 만들어진 흙과 지형 등이다. 이외에도 기후 환경을 들 수 있다. 기온·바람·강수량·일조량 등이 있다. 고도 차에 따라 기후요소가 다르고 식생에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식물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사람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식물에 어떤 공격을 자행해 왔는지를 볼 수 있다. 다음은 식물끼리 경쟁이다. 이는 해발고도별로 터줏대감 식물들이 있다. 이들은 그 지역에서는 투쟁의 승리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사진자료1>
<사진자료2>
○ 필자 소개 필자는 1959년 제주시 월평동에서 태어나 제주의 숲과 오름을 사랑하는 제주 토박이다. 제주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한때는 제주일보 편집부장, 제주경실련 사무처장과 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현안과 맞서기도 했다. 시인이면서 산림치유지도사를 취득한 후에 ‘제주숲치유연구센터’를 설립해 숲의 치유력을 탐하고 있다. 2012년에는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

